더 헌트(2012) _ (덴마크 영화)
연출: 토마스 빈터베르
출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보 라센, 아니카 베데르코프
목차
1.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2. “아이들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3. 2012년 칸 영화제 남우 주연상 수상, 평단에 호평을 받은 영화
* 이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범죄가 다 나쁘지만, 성범죄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자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죗값을 치르기(그 이상의 벌을 받기)를 강하게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람이 여러분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들 아이들을 찾아 집에 가느라 바쁜 덴마크 시골 마을의 한 유치원. 출입구 가까운 방에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라는 여자아이가 불도 안 켠 채 앉아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이 돌아간 뒤, 원장 선생님이 클라라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클라라 어쩐지 기분이 나빠 보입니다.
“루카스 선생님이 싫어요. 멍청하고 못생겼어요. 고추도 있어요.”
클라라는 갑작스럽게 루카스(매즈 미켈슨) 선생님이 싫다고 투덜댑니다. 원장 선생님은 고추는 클라라의 아빠와 오빠도 있다며 달래는데 클라라가
“루카스 선생님의 고추는 막대기처럼 앞으로 뻗어 있어요.”
라고 다분히 성범죄가 의심되는 말을 합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원장 선생님은 클라라를 진정시키며 클라라가 말한 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자 합니다. 그때 클라라 엄마가 도착하고 클라라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원장 선생님은 클라라의 말을 곱씹으며 분명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덴마크의 작은 시골 마을, 유치원 학부모의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친구들입니다. 루카스와 클라라의 아빠인 테오는 절친이기도 합니다. 원장 선생님은 이제 고등학생쯤 되는 루카스의 아들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원장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장 선생님은 다음 날, 아침 출근한 루카스를 불러 아이 중에 누군가 당신의 성기를 보았다고 했다며 루카스를 떠봅니다. 루카스는 “그게 가능하기나 합니까.”라고 되묻습니다. 원장은 루카스에게 일단 쉬라며 휴가를 주어 돌려보내고, 아동 심리 전문가를 불러 클라라의 진술을 다시 듣습니다.
그런데 클라라는 전날과 달리 대답이 모호합니다. 대답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모른다고 합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장 선생님과 아동 심리 전문가는 질문을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클라라를 다그치진 않지만 그들은 계속된 물음과 클라라의 간헐적인 답을 듣고는 클라라가 전날 말한 성범죄 정황이 분명 있었음을 확신합니다.
그리고는 지체없이 유치원 교직원들과 공유하고 때마침 그날 저녁에 진행된 학부모 모임에서도 유치원 안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공표합니다. 이제 ‘루카스’는 모두에게 파렴치한 아동 성범죄자로 인식됩니다. 아직 경찰의 소환이나 조사도 진행되기 전에 말입니다.
원장 선생님은 자신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제가 원장 선생님 입장이었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합니다.
2. “아이들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라는 믿음
이 영화는 사실 주인공 ‘루카스’가 진범일까 아닐까를 다투는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 하고자 하는 말은 ‘공동체의 믿음’,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공동체의 잘못된 믿음’과 그로 인한 비극입니다.
루카스는 이혼 후 고향에 돌아와서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잘 지내고, 쉬는 날에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장난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인물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이혼 후 떨어져 지내는 아들 ‘마쿠스’와 함께 사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클라라’의 갑작스런 진술이 있었던 그 날은 앞으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 기쁜 날이었고 같은 유치원에서 일하는 ‘나디아’라는 직원과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루카스는 자신을 성범죄자로 단정 짓고 일을 처리하는 원장 선생님에게 항의하러 갑니다. 어떻게 자신에게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이럴 수 있냐는 겁니다. 억울한 루카스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항의입니다. 원장 선생님은 그런 루카스를 피해 뒷걸음으로 멀어지면서,
“아이들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라고 확신에 차서 외칩니다. 원장 선생님의 확신은 원장 선생님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제까지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 절친이자 클라라의 친부 ‘테오’ 모두 확신했습니다. ‘설마’라는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믿음은 진실이 되고 사실이 되었습니다. 유치원에서는 추가 피해자로 의심되는 아이들의 진술도 나옵니다. 루카스는 철저히 버려집니다. 루카스는 그들의 눈에는 누가 뭐래도 파렴치한 아동 성범죄자입니다.
공동체의 확고한 믿음 앞에서 ‘루카스’는 그러나 자신의 ‘무죄’를, ‘결백’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루카스가 ‘호소’하는 결백은 그들에게 ‘변명’일 뿐입니다. 그런 루카스에게 돌아오는 것은 정신적, 물리적 폭력입니다. 루카스의 말은 한 명의 친구(브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마트에서나 술집에서나 사람들은 루카스를 경멸하고 실질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루카스가 점점 지쳐 폐인이 되어갈 때 아들 마쿠스가 엄마 몰래 아빠 루카스를 찾아옵니다. 아들의 방문은 루카스에게 힘이 되지만 마을 사람들은 루카스의 아들 마쿠스도 곱게 보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루카스가 경찰의 소환되고 하룻밤 정도 조사를 받습니다. 마쿠스는 대부이자 아버지의 친구인 ‘브룬’의 집을 찾아 아버지 조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그런 마쿠스에게 브룬은 유치원 아이들이 모두 같은 진술을 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이 루카스의 집 지하실에 대해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카스의 집에는 ‘지하실’이 없습니다.
3. 2012년 칸 영화제 남우 주연상 수상, 평단에 호평을 받은 영화
루카스는 법적으로 무죄가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이전의 삶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루카스 얼굴에 남은 상처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확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먼저 루카스에게 손 내밀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사건 후 약 일 년 뒤 루카스의 아들 ‘마쿠스’의 성인식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루카스와 친구들은 관계가 많이 회복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인식 이후 이어진 사냥, 루카스는 사슴 무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잠시 무리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 누군가 루카스 바로 옆 나무에 총을 쏩니다. 깜짝 놀란 넘어진 루카스와 멀리 보이는 총을 겨누고 서 있는 실루엣.
루카스는 이 마을에서 여전히 ‘사냥감’입니다. 루카스를 겨눈 불특정 다수의 총구는 언제든 불을 뿜을 것입니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루카스를 연기한 ‘매즈 미켈슨’은 이 영화로 2012년 칸 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매즈 미켈슨의 눈빛과 표정들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는 의미로 어떤 소문(결과)이 있을 때 그 소문이 난 이유가 있을 거 라고 믿어 버릴 때 인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헌트’를 보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는 경우도 있을 듯합니다.
누군가에게 연기난다고 손가락질 하기 전 보다 신중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한 번 생긴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상, 헌트(2012)였습니다. (헌트는 IPTV에서 유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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