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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고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의 모든 것

by GimReport 2024.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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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보셨나요? 한 가족의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사운드와 배경을 통해 잔혹한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를 드러냅니다. 주인공 수용소 소장인 '루돌프 회스'는 실존 인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으로 무려 35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속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의 모든 것을 간단히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의 모든 것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사운드를 잘 활용하여 참혹한 역사를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폭력에 대한 직접 표현 한 번 없이도, '악의 평범성'이 주는 소름끼지는 현실을 인상 깊게 구현하고 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관한 '인터레스트한 점'은 아래 포스팅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뜻, 후기 이 영화의 인터레스트한 점 셋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폴란드의 한 도시. 독일 장교 루돌프는 이곳 수용소 소장으로 복무하며 가족과 함께 관사에서 행복한 일상을 보냅니다. 다섯 아이들, 아내가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

semo.gimreport.com

 

주인공 '루돌프 회스'는 이름이 주는 친근함과 다르게 무척이나 악랄한 인물인데요. 그는 어떤 인물이고 실제 그의 최후는 어떠했는지 간단하게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루돌프 회스, 성직자을 꿈을 버리고 악인의 길을 걷다

 

'회스'는 도덕적 삶을 강요한 집안 분위기에 따라 성직자의 길을 가려고 관련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고해성사 중 자신이 친구를 밀어 다치게 한 일을 고해했고, 후에 같은 일로 아버지께 혼나자, 신부님이 이른 것으로 판단 성직자의 길을 접고 나옵니다.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

 

이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회스는 적십자 보조원으로 부상병을 돌봅니다.  그 과정에서 회스는 군인이 되기로 마음 먹고 입대하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회스는 거듭 입대를 시도하고 끝내 15세 때 육군에 배치됩니다.

 

 

회스는 중동 전선에 배치되어 전쟁을 치르고 17세 나이에 1급 철십자 훈장을 받고 부사관이 되는 등 뛰어난 능력을 보입니다. 이후 기병 소대 소대장으로 활동하다가 종전. 독일로 돌아옵니다.

 

루돌프 회스,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을 듣다

 

전쟁 후 회스는 정치 깡패로 활동하다가 1922년 히틀러 연설에 감화를 받고 나치당에 입당 카톨릭 신앙 포기합니다. 이후 회스는 계속 조폭 활동을 이어가고 급기야 1923년 5월 발터 가도라는 23세 교사를 독일의 배반자라고 하며 술에 취하게 한 후 인근 숲에서 린치를 가하고 총을 쏴 살해 후 암매장하기까지 합니다.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

 

이후 회스는 1923년 6월 28일 공범의 자수로 체포되었으나 뮌헨 폭동 등 혼란한 상황 속에서 징역 10년(1924년)을 받았지만 1928년 대사면되면서 풀려납니다.  출소 후 1929년 8월 헤트비히 헨젤과 결혼 이후 2남 3녀를 두게 됩니다.

 

 

 

이후 회스는 하인리히 힘러(제 4대 나치 친위대 장관)의 요청으로 1934년 6월 정식 SS 돌격대원이 됩니다. 이를 계기로 회스는 힘러를 숭배합니다. 이어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근무하며 단 2년만에 일반 병사에서 간부(소위)로 진급하는 등 승승장구합니다. 아마도 수용소 에서 자행된 반인륜 범죄에 적극 가담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루돌프 회스 아우슈비츠 수용소 초대 소장이 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대위로 진급한 회스는 나치 친위대 소속으로 활약합니다.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창설에도 개입하여 수용소 창설을 적극 건의하고  1940년 5월 4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창설 초대 소장이 됩니다. 이후 수용소에서 온갖 학살을 지속하는데 

 

‘ 기술적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수를 박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인 자체가 가장 적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30분이면 2,000개의 머리를 처리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불태우기였습니다. 살인은 쉬웠습니다. 그들을 방으로 몰아넣기 위해 경비원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샤워를 기대하고 들어갔고 물 대신 독가스를 켰습니다.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학살은 그저 일이었을 뿐입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인간적인 감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루돌프 회스는 또 최초의 독가스 처형 실험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총살에 관여할 때는 언제나 참혹함과 혐오감에 사로 잡혔다. 그러나 이제는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한편으로는 희생자들도 최후의 순간까지 친절하게 돌보아줄 수도 있겠고 해서 나로서는 마음이 편했다.

 

 

이런 회스는 1943년 11월 회스는 잠시 아우슈비츠 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1944년 5월 다시 복귀하게 됩니다. 그리고 복귀해서는 일명 '회스 작전’으로 하루 만 명씩 유대인들을 학살합니다. 심지어 가스실과 화장장이 부족하자 구덩일 파고 불을 피운뒤 처형할 유대인들을 유도 총을 쏴 죽이기도 합니다. 

 

루돌프 회스의 최후 

 

2차세계대전 말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가 연합군에게 점령당하기 전에 탈출에 성공(1945년 1월 18일) 프란츠 랑이라는 가명을 쓰며 정원사로 숨어 지냅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속 집안 정원을 보면 그가 은둔하기 위해 택한 직업이 꽤나 잘 어울려 보입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

 

그의 도피 생활도 1946년에 끝맺습니다. 영국 정보부는 회스의 부인을 협박(남편의 위치를 말하지 않으면 아들을 소련 수용소에 보내겠다) 회스의 위치를 알아내 체포합니다. 같은 해 4월 루돌프는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습니다. 

 

 

루돌프는 반성하는 모습 없이 자신의 악행을 줄이고 선처를 받기에 급급했지만 1947년 4월 끝내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루돌프 회스는 뒤늦게 회개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에 따라 아우슈비츠에 '루돌프 회스'만을 위한 특별 교수대가 설치됩니다. 이는 '현수식 교수대'로 사형수가 서서히 질식해서 고통스럽게 죽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1947년 4월 16일. 루돌프 회스는 자신을 위한 특별 교수대에서 45세의 짧고 악랄한 생애를 마감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

 

아우슈비츠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한 루돌프 회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아우슈비츠의 마지막 처형자가 되었습니다. 이상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의 모든 것 간단하게 알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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