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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고서

'노량 죽음의 바다' 역사 속 노량해전 정리!!!

by GimReport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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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죽음의 바다', 보셨나요? '노량'은 지난 12월 20일 개봉 이후, 흥행 순항 중인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노량'에서는 이순신 장군,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을 다루고 있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실제 역사 속 '노량해전'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영화와 비교해서 읽어 보시면 영화의 재미를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 속 노량해전 정리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의 압권은 이순신 장군의 최후 전투인 노량해전 긴장감과 스펙타클을 잘 살려냈다는 점입니다. 영화 '노량'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전투를 뛰어난 시각효과와 연출로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영화 '노량'에 대한 리뷰는 아래를 읽어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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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 '노량, 죽음의 바다'가 지난 12월 20일에 개봉했습니다. 현재까지 예매 순위 1위를 달리며 순항하고 있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노량 죽음의 바다' 손익분기점, 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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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왜란과 이순신 장군의 해전

 

1592년 임진년 4월에 왜가 한반도로 상륙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조선은 싸울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왜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여 순식간에 한양까지 밀고 올라 옵니다. 조선의 국운이 바람 앞에 등불같은 상황, 반격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었습니다. 

한산 속 이순신과 명량 속 이순신

 

임진년 7월 8일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왜의 수군과 한산도 앞바다에서 맞붙고 기세등등했던 왜를 크게 무찌릅니다. 이때부터 조선은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덧 여섯 해가 흐른 1597년 이순신은 우여곡절 끝에 수군 지휘를 다시 맡지만 조선의 수군은 이전 한산도에서 맹위를 떨쳐던 수군이 아닙니다. 

 

 

이에 이순신은 수군을 재정비하면서 그 유명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명량'에서 왜군과 맞섭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수적 열세를 딛고 왜군을 대파하여 전쟁 막바지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 숨통을 조입니다. 

 

이순신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 일지

 

1597년 뭍에서는 직산 전투의 승리, 바다에서는 명량 해전에서 대승한 조선은 반도에 있는 왜군의 숨통을 조이며 반격합니다. 그러나 열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군의 철군을 금지하고 왜군은 남하를 거듭하다 순천, 사천, 울산, 부산 등에 왜성을 쌓고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노량 죽음의 바다

 

이에 조명 연합군은 공성전으로 왜를 몰아내려했으나 실패합니다. 그러다 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조선에 있는 왜군에 철군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조명 연합군은 '사로병진'으로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왜를 압박하며 왜군을 곱게 돌려보낼 의사가 없음을 드러냅니다. 

 

노량, 죽음의 바다

 

이순신을 중심으로한 조선 수군과 진린이 이끄는 명의 수군은 순천 바다를 둘러싸고 왜장 고니시 부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진린은 이 전쟁이 끝났다고 보고 왜를 그냥 보내주자고 이순신을 설득하나, 이순신은 이렇게 전쟁을 끝내선 안 된다며 강경하게 맞섭니다. 

그 사이 고니시가는 진린이 눈감아 준 틈을 타 사천에 있는 시마즈에게 연락선을 보내 구원병을 청하고 시마즈는 고민 끝에 고니시를 구원하러 함대를 이끌고 순천으로 향합니다. 바로 시마즈가 순천으로 오는 길목에 노량해협이 있었고 여기서 이순신과 시마즈가 크게 맞붙게 됩니다. 

 

진린과 등자룡 이순신

1598년 12월 15일 늦은 오후

 

이순신은 고니시의 연락선이 빠져나간 것을 알고 시마즈의 함대가 곧 들이닥칠 것을 예상합니다.  이순신 함대는 셋으로 나눠 출격합니다. 하나는 위장함대로 순천왜성을 치려는 듯하여 고니시를 교란합니다. 

 

또 다른 본대와 복병함대는 시마즈의 함대와 노량에서 맞붙기 위해 노량으로 향합니다. 

 

12월 16일 0시 ~2시,

 

순천에서 치솟은 봉화를 보고 시마즈는 이순신의 함대가 순천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 지체없이 노량을 통과합니다. 그 순간 조선의 복병함대가 시마즈 함대를 기습합니다. 순간 시마즈 부대는 당황했지만 이내 조선의 복병 함대가 몇 안 되는 줄 알고 조선 함대를 포위하려 합니다. 그때 멀리 있던 명의 수군이 전투에 합류합니다.  시마즈는 이들을 빠르게 따돌려 순천으로 향하려 합니다.

 

노량 죽음의 바다

 

12월 16일 오전 2~4시 

 

왜 함대가 속력을 내 관음포까지 전진했을 때 이순신 본 함대가 등장 왜 함대의 3면을 포위합니다.. 조선 본 함대는 첨자찰진(삼각형의 돌격형)으로 일본 수군의 옆면에 등장, 파고 들며 일본 대장선을 위협하고 왜 지휘부는 혼란에 빠집니다. 같은 시각 순천의 고니시는 위장함대에 속은 것을 알고 배를 출발합니다.

 

12월 16일 4~6시

 

왜군의 선봉대가 무너지고 시마즈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명 수군을 공격 포위망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때 같은 명군의 오발로 명의 부도독 등자룡의 판옥선에 불이 붙고 왜군은 이를 집중 공격 끝내 등자룡은 전사합니다. 왜군은 명 도독 진린까지 노리나, 조선 수군이 진린을 구원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 수군은 첨자찰진에서 포위진으로 변화를 주고 근접에서 포격을 가해 포위망을 좁혀 나가려 합니다. 그러나 밤이었기에 가시거리가 제한적이어서 근접전과 백병전 위주로 전투가 전개됩니다. 

 

12월 16일 오전 6~8시

 

해뜰 무렵 바닷물의 방향이 바뀌었으나 관음포 파도는 관음포로만 향해 왜군이 빠져나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군을 포위섬멸하려는 조명 연합군과 죽기살기로 최후의 발악을 하는 왜군의 전투는 막바지로 치닫고 순천왜성을 빠져나와 노량에 당도한 고니시는 시마즈가 대패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도망칩니다.

 

 

12월 16일 8시 ~10시

 

왜군의 최후의 발악은 이순신이 탄 대장선 방향으로 향하고 일본의 후방군 무네시게가 조선 1군의 후방을 치고 들어 오며 난전이 발생합니다.  이때 왜장 시마즈도 탈출하나 조선 수군의 장수들이 다수 전사했는데 이순신 장군도 전사하게 됩니다. 

 

12월 16일 10~12시 

 

왜선은 2백여척이 부서지고 물에는 배의 잔해와 시체 등이 뒤덮여 붉었다고 합니다. 노량해전에서 왜선 전체 300여척 중 50여척만 관음포를 빠져나와 도주했습니다. 조선 수군의 대승이었으나 조선은 '이순신' 및 많은 장수를 잃습니다. 물론 이 전투를 계기로 길었던 임진왜란은 마무리됩니다.

 

이상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역사 속 노량해전 정리해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후 영화의 재미를 되새기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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